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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프로젝트콘캣

"알아서 해줘"라고 했더니 AI가 길을 잃었다

피그마 MCP와 클로드로 모바일 디자인 시스템을 데스크탑 대시보드로 옮긴 '바이브 코딩' 프로젝트에서, 주니어 디자이너가 AI를 향한 세 가지 편견이 깨진 기록. 모호한 형용사 대신 구조화된 명령이 필요했고, 전문가 페르소나를 줘도 AI는 멘토가 아니라 비위를 맞추는 작업자였으며, 가이드의 빈틈은 곧 내 시스템의 구멍이었다는 깨달음을 정리했다.


"알아서 해줘"라고 했더니 AI가 길을 잃었다

요즘 어딜 가나 AI 이야기뿐이다. 'AI가 디자이너를 대체한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 필수다' 등 쏟아져 나오는 소식들을 접할 때면 마음 한구석이 찔리곤 했다. '아, 나도 AI 공부해야 하는데…'

하지만 주니어 디자이너로서 당장 눈앞의 업무를 쳐내기도 바쁜 와중에, AI를 업무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피그마 MCP와 클로드를 활용한 '바이브 코딩(Vibe Coding)'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면서, 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 프로젝트는 모바일을 기반으로 제작된 'BizCrush'의 디자인 시스템을 활용해 데스크탑 대시보드를 제작해야하는 작업이었다. 처음엔 AI가 뚝딱! 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첫 명령을 내린 순간부터, 내가 AI에 대해 얼마나 큰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편견 1. AI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다 알아서" 해준다?

작업을 시작할 때, 나는 AI와 대화하며 내 생각이 충분히 쌓였다고 착각했다. 길게 말하지 않아도 AI가 알아서 맥락을 파악하고 완벽한 결과물을 내놓을 줄 알았다.

결과는 참담했다. 기존 시스템이 아예 무시된 것은 아니었지만, 규칙에 맞지 않게 무분별하게 반영되어 있었다.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겪으며, AI에게는 그냥 던지는 '말'이 아닌, 명확한 구조를 가진 '명령'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깔끔하게 알아서" 혹은 "느낌있게 잘" 같은 모호한 형용사와 불평에 AI는 길을 잃는다. "Row 1은 6:4 스플릿, 지정된 Token만 사용"처럼 AI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구조로 전달해야, AI가 내 의도대로 움직인다.

편견 2. 나를 정답으로 이끌어주는 '멘토'겠지?

프롬프트를 작성할 때 흔히 "당신은 10년 차 프로덕트 디자인 전문가입니다"라는 페르소나를 부여하곤 한다.  전문가 페르소나를 주었으니, 내가 실수를 하더라도 AI가 나를 정답으로 인도해 줄 것이라 굳게 믿었다.

하지만 전문가 페르소나를 부여하는 것과 결과물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였다. AI는 평가자가 아니라, 어떻게든 내 비위를 맞추려 하는 존재였다. 전문가 페르소나를 주었더라도 최종 결정권자는 결국 '나' 자신이다. 

편견 3. 완벽한 가이드를 주면 "100%" 그대로 반영한다?

앞선 두 번의 과정을 거치며, 나는 AI를 다루는 요령을 나름 터득했다고 생각했다. 디자인 시스템 가이드 문서를 명확한 룰로 주었으니, 이제 완벽한 규격의 컴포넌트를 찍어낼 것이라 생각했다.

가이드가 촘촘하게 정의된 버튼, 인풋, 칩 같은 요소들은 정상적으로 반영되었다.  진짜 문제는 내 가이드에 '구멍'이 있을 때 발생했다.

빈틈의 발견: 정의된 규칙이나 시스템이 없는 경우, AI는 기획에 맞게 임의로 변경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버렸다.

대참사: 아이콘(Icon)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이모지(emoji)를 넣어버리기도 했다. 결국 "Icon 자리에는 emoji가 들어갈 수 없다"고 명시해야만 했다.

언어의 변화: 프롬프트의 발전 과정

AI가 알아듣는 말은 따로 있었다. 피그마에서 하듯 단편적이고 시각적인 지시는 불필요한 토큰만 소모할 뿐이었다.

나는 이러한 시각적 지시를 멈추고 논리적인 리스트와 구조를 갖춘 단계별 프로세스로 프롬프트를 발전시켰다.

AI는 마법사가 아니었다. AI가 내 머릿속을 알아서 읽어주거나 나의 부족함을 알아서 채워줄 것이라는 환상은 이제 없다.

AI와 일한다는 것은 내 머릿속의 막연한 기준들을 논리적인 언어로 정리하는 일이며,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우리 시스템의 구멍을 발견하고 더욱 촘촘하게 메워가는 과정이었다.